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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서 학점 취득 ‘이러닝’…“들을 수업 없지 말입니다”201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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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향신문_2018. 8. 20.

군대서 학점 취득 ‘이러닝’…
“들을 수업 없지 말입니다”

 

ㆍ올 2학기 139개 대학 참여…졸업요건 무관 과목 위주
ㆍ수강료 최고 40만1000원, 병장 월급 맞먹는 고액
ㆍ“부실 제도, 홍보만 요란”

 

“취지가 아무리 좋으면 뭐 해요, 실용성이 없는데….”

김모씨(23)는 군 복무 중 인터넷 강의로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군 이러닝(e-learning) 제도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연세대 2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한 김씨는 지난달 휴가를 나왔다 군 이러닝 제도를 알게 됐다. 전역 후 취업 준비와 학업을 병행하는 부담을 줄이려고 이 제도를 이용하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연세대는 2018년 2학기 군 이러닝 과목으로 ‘이상행동의 심리’ 한 과목을 개설하고 수강 인원도 30명만 들을 수 있게 제한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졸업하는데 필요하지도 않은 과목을 34만원이나 주고 들을 수는 없었다”며 “개인정비 시간을 활용해 강의를 들을 수 있으면 전역 후에 학교에 적응하기도 쉬울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개혁이라고 새로운 제도만 도입하지 말고 기존에 있는 제도부터 제대로 운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2007년 군 이러닝 제도를 도입했다. 참여하는 대학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군 이러닝 제도로 1년에 최대 12학점까지 취득이 가능하다. 장병들은 부대 내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각자 재학 중인 대학이 제공하는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면 된다. 대부분 대학은 온라인 시험이나 리포트 제출로 평가하지만 일부 대학은 오프라인 시험을 실시한다. 장병들은 개인 휴가를 내거나 부대장의 허가를 받아 외출해 시험만 치고 복귀하는 식으로 융통성 있게 운영된다.

도입 당시에는 6개 대학만 참여했던 군 이러닝은 2018년 2학기 139개 대학이 참여하는 등 양적으로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을 보면 대부분의 대학들이 참여하는 시늉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주요 대학들은 이 제도에 참여하지 않거나 학생들의 졸업요건과는 관계없는 과목 1~2개만을 개설해 제도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국방부가 운영 중인 ‘나라사랑포털’에는 매 학기 학교마다 개설되는 강좌들에 대한 정보가 공개된다. 이에 따르면 2018년 2학기 전체 139개 대학 중 68개 대학이 5개 이하의 강의를 개설했다. 이 중 서울대는 4개, 고려대는 3개의 강의를 개설했고 연세대는 1개의 강의만 개설했다.

연세대의 경우 2018년 1학기에는 200명이 수강할 수 있는 강의가 열렸지만 2학기에는 30명만 수강할 수 있는 강의로 축소됐다. 2013년부터 군 이러닝에 참여한 건국대도 첫해 11개 강의에서 올해는 4개 강의로 줄었다. 주요 대학 중 전공과목 개설은 서울대 이준구 교수의 ‘경제원론1’이 유일하다. 한 대학은 경향신문 확인 결과 강의를 맡은 교수가 더 이상 해당 학교에 재직하고 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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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인터넷 카페 등에는 군 이러닝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들이 많다. 지난 17일에는 페이스북 제보 페이지 ‘연세대 대나무숲’에 ‘연세대 군 이러닝 시스템은 너무나도 부실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공부 좀 해볼까 하다가 바로 정원 마감돼서 포기했다” “연대는 군에서 들을 수 있는 강의 1개 열어주고 등록금도 무지 비싸다. 그래놓고 강의 엄청 생기는 것처럼 홍보한다” “이럴꺼면 애초에 개설을 왜 하냐” “우리 학교만의 상황은 아닌 듯”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어떤 강의라도 자신의 대학에서 개설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글도 있다. 지난 18일 ‘숭실대 대나무숲’에는 “군대에서도 학점을 따고 싶다. 숭실대는 왜 참여조차 하지 않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군 복무 기간 동안의 교육 단절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는 글들이었다.

참여 대학은 늘었지만 강의 부족·부실로 참여 학생은 줄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2015년 1만4000명의 군 이러닝 수강생은 2018년 현재 1만명 정도다.

장병들의 수요가 있는 만큼 국방부나 대학 측도 군 이러닝 제도의 유용성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제도가 개선 및 확대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비용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군 이러닝이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대학 측이 이를 의무 복역하는 장병에 대한 보상이 아닌 비용으로 인식하는 한 확대 시행은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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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이러닝 제도의 문제를 대학 측의 책임으로만 볼 수도 없다. 국방부는 군 이러닝 제도를 군인공제회에 위탁 관리하도록 하는데 139개 대학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인원은 한 명이다. 실상은 이렇지만 국방부는 군 이러닝 제도를 장병들을 위한 복지 중 하나로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대안 중 하나로 ‘학점 교류’를 확대하는 길이 있다. 부산, 울산 등 경상권 학교들은 ‘학점 교류’ 업무협약을 맺고 권역 내 대학에 재학 중인 장병이라면 타 대학의 인터넷 강의를 수강해도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대학들이 군 복무 중인 재학생들의 교육 단절을 막겠다는 뜻만 있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김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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